크리스 왈시 선생님의 실험실을 떠나며 (Leaving the Walsh lab – farewell speech transcript)

이 실험실에 온 지 9년이나 됐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저는 30대 거의 전부를 크리스 선생님과 같이 보낸 셈입니다. 저는 이 실험실에서 매 순간을 즐기며 지냈습니다.

2006년에 포닥 자리를 알아볼 때, 저는 두뇌 발달을 유전학적인 방법으로 연구하고 싶었습니다. 또 중간 규모 실험실에서 비교적 젊은 교수 밑에서 일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실험실은 보스턴에 있어야 했습니다. 저는 존스홉킨스의 저명한 신경생물학자인 솔로몬 스나이더 밑에서 생화학적 방법을 이용해 유전성 신경퇴행질환인 헌팅턴 병을 연구해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유전학의 강력함과 아름다움에 매혹됐습니다. 그리고 저는 두뇌에 대해 계속 연구하고 싶었습니다. 또한 젊고 용기있는 리더 밑에서 실험실이 어떻게 발전해나가는지 배우고 싶었습니다. 사실 저는 무조건 보스턴으로 와야만 했는데, 제 사랑하는 아내가 보스턴 어린이 병원의 데이빗 클래팜 교수 앞에서 세미나를 한 후 즉석에서 포닥 자리를 제안받았기 때문입니다. 보스턴에는 이런 복잡한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실험실이 딱 하나 있었는데, 그게 바로 크리스토퍼 A. 왈시 교수의 실험실이었습니다.

저는 크리스에게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예를 들면 논문을 쓸 때, 같은 데이타를 두고 얘기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연구비 제안서를 어떻게 매력적으로 쓸지 등을 배웠습니다. 무엇보다도 크리스는 제게 탁월한 과학과 행복한 가정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잡는지 가르쳐주었습니다. 사모님과 멋진 두 딸 J, M이 바로 그 균형의 증거입니다.

한군데서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면 사람들이 조언해달라고 찾아옵니다. 그 사람이 전문가일 거라고 지레짐작하고 말이죠. 지난 세월동안 감사하게도 이 실험실의 여러 사람이 제 조언을 구하러 왔습니다. 그러나 전설적인 물리학자 닐스 보어가 말했듯, “전문가란 좁은 분야에서 가능한 모든 실수를 다 저질러본 사람”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여기 있는 어떤 분들보다 실수를 많이 했습니다. 그 실수 중 일부는 심지어 과학에 관련된 것도 아닙니다. 오늘은 제가 이 실험실에서 저지른 실수 중 잊을 수 없는 세 가지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첫번째 실수는, 제가 2011년에 #### 논문을 평가할 때 너무 재미가 없어서 크리스를 버려두고 도망간 것입니다. 크리스와 저는 당시 두뇌 발달에 관한 면밀하고 방대한 논문 하나를 리뷰하고 있었습니다. 그 논문은 8개의 주요 데이터와 20개도 넘는 보충 데이터가 담긴 흠잡을 데 없는 논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논문이 지루했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지루해서, 한 달 동안이나 붙들고 있었는데도 도저히 끝까지 다 읽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크리스에게 아무 피드백도 안 주고 도망갔습니다. 이 말 한 마디는 했죠. “크리스 선생님,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 논문을 끝까지 읽을 수 없습니다. 이 논문은 완벽하며 참을 수 없이 지루합니다.”

그래서 크리스는 일요일에 혼자서 10시간 넘게 리뷰한 후에 편집장에게 이렇게 답을 보냈습니다. “이 논문은 내 인내심의 한계를 테스트합니다. 내가 이 분야의 전문가인데도, 읽기가 싫습니다. 사실은 내가 뛰어난 포닥 한 명과 같이 리뷰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 포닥이 나를 버려두고 도망가면서 이런 말을 남기더군요. ‘내용은 탄탄하지만, 이 논문이 정말 재미있나요?’ 혼자서 몇 시간이나 이 논문과 씨름하고 나서도, 그 포닥이 남긴 말에서 조금도 더 나가지 못했습니다. 이 논문은 기술적으로 수준이 높기 때문에, #### 같은 굉장히 좋은 저널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정은 편집장인 당신에게 맡기겠습니다”

크리스는 너무나 신사이기 때문에, 제게 이렇게만 말했습니다. “내가 #### 편집장에게 뭐라고 보냈는지 네가 읽고 싶어 할 것 같아 리뷰의 내용을 보내준다. 다음에는 현/실/적/으/로/ 논문을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을 때만 리뷰하겠다고 나서줘. 알았지? 고마워. 크리스.”

두번째 실수는, 제가 3만 불의 연구비를 들여서 ASPM 녹아웃 족제비를 만들고 나서도, 족제비의 큰 머리가 무서워서, 두개골을 열어보지 못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생쥐의 뇌는 작고 매끈하기 때문에, 인간 두뇌 발달을 잘 모델링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야심차게 ASPM 녹아웃 족제비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족제비의 두뇌는 훨씬 크고 주름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이용해, ASPM을 망가뜨리는 유전자 가위를 만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잘 되는 듯싶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제가 족제비의 큰 두개골을 열기에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무서워서요! 그래서 저는 포르말린에 절인 ASPM 녹아웃 족제비의 머리를 유리 항아리에 담아 놓고, 몇 주일이나 방치했습니다. 그리고 랩미팅 발표날이 왔습니다. 크리스는 제가 아직도 족제비의 두개골을 안 열어보았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하더니, 제 발표 후 “직접” 족제비의 두개골을 열었습니다. 여기 계신 분 중 일부는 크리스가 그 날 직접 수의학(獸醫學) 해부 도구를 이용해 족제비 두개골을 연 모습을 생생히 기억하실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ASPM 녹아웃 족제비의 뇌는 소두증의 양상을 뚜렷하게 보였고, 지금 우리는 데이타를 마구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크리스 선생님, 족제비 머리 해부 방법을 직접 생생히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 날의 시연을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마지막 실수는, 제가 맥주병 여러 개를 실험대 밑 서랍에 숨기는 바람에, 우리 실험실이 안전검사에서 탈락할 뻔했다는 것입니다. 실험실이 New Research Building에 있었던 2006-2007년에 우리는 금요일 오후마다 옆의 George Church 실험실, Fred Winston 실험실과 해피아워를 했습니다. 맥주가 있길래 저는 좀 마셨고요. 문제는, 제가 맥주를 실험실에 들고 와서 끝내는 위험한 버릇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빈 맥주병을 몇 발자국 걸어가 재활용 쓰레기통에 넣기가 귀찮아서, 실험대 밑 서랍에 차곡차곡 모아두었습니다. 나중에 한꺼번에 처리할 생각으로요. 불운하게도, 저보다도 안전검사 요원이 그 맥주병들을 더 빨리 처리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불시에 들이닥쳐 안전검사를 하다가, 서랍의 빈 맥주병들을 보더니, 막 웃고는 안전검사일지에 적어버렸습니다. 다음 날 바로 랩 매니저 크리스티나가 제게 오더니, “병일! 당장 그만둬! 대체 왜 이래?!”하는 겁니다. “크리스도 알아?” “당연하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물론 크리스는 제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황당한 실수들에도 불구하고, 저는 긴 포닥 끝에 짧은 논문 하나를 내고, 뉴헤이븐의 작은 대학에 아내와 함께 자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저희 집 애들은 예나 지금이나 건강하고 웃깁니다. 제 삶에서 이 이상 더 무엇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이 실험실에서 제가 받은 모든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가 떠난 이후에도, 저를 비롯한 실험실 동문들에게 주저하지 말고 연락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 돕는 오누이들 같습니다. 예를 들면, 저는 직장을 구하는 동안 키아라, 마리아, 앤, 팀, 심지어 실험실을 떠난지 오래된 노엘에게도 도움을 받았습니다. 우리 실험실 동문들은 여러분들이 멀리 갈 수 있도록 아낌없이 도울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15년 8월 14일)

I cannot believe that it’s been nine years since I joined this lab. Basically, I spent my entire 30s with Chris, and I have thoroughly enjoyed almost every minute.

When I was looking for a postdoc position in 2006, I really wanted to do some genetic studies of brain development in a moderate size lab of a relatively young principal investigator in Boston. After getting my PhD under Sol Snyder, an eminent neuroscientist at Johns Hopkins, studying a degenerative brain disorder using biochemical tools, I wanted to do genetics as I have always admired its power and beauty, and I wanted to continue to work on the brain. Also, I wanted to watch and learn how a lab makes progress under a young, fearless leader. I had to come to Boston anyway because my beloved wife, Jean-Ju Chung, got an offer from David Clapham at Boston Children’s Hospital immediately after her seminar. In Boston, there is only one lab that meets all my criteria, and that is the laboratory of Christopher A. Walsh.

I have learned so much from Chris, such as how to make a compelling story when there are many alternatives, and how to write an attractive grant proposal. Furthermore, Chris has shown me how to balance terrific science and personal life, which is evidenced by M. and their two wonderful daughters, J. and M’.

Once you have spent a number of years in one place, people come to you for an advice, assuming that you’re an expert on something. I appreciate that many people have come to me over the years, but as the legendary physicist Niels Bohr said, “an expert is a man who has made all the mistakes which can be made, in a narrow field.” In that sense, I have made more mistakes than perhaps anybody else in this lab, and some of them were not even scientific. Today, I will tell you about the three unforgettable mistakes I made in the Walsh lab.

The first memorable mistake was deserting Chris while reviewing a paper in #### in 2011. Chris and I were reviewing an extremely rigorous and enormous paper on brain development. It was an impeccable paper with 8 main figures and more than 20 supplementary figures. But the problem was that it was boring. Actually, it was so boring that I could not finish reading the paper, although I tried really hard for a month. So I deserted Chris without giving him any comments. I just said, “Chris, I am sorry but I cannot read through this paper. It is perfect and hopelessly boring.” So Chris had to review the paper by himself for 10 hours on a Sunday and wrote to the editor, “This was a total bear to referee, and I did not find myself eager to read it, despite my interest in the field. In fact, I refereed it with an excellent postdoc, and he read it, but deserted me in not providing any comments except to say it ‘looks solid, but is it really that interesting’? After hours more work, I find I have not moved much beyond that statement. So I think the paper probably belongs in a really good journal-like ####-because of its technical quality, but will leave it to you to decide which.” As Chris is such a gentle person, he just told me, “I thought you might want to see the comments I submitted. Next time, only agree to referee it if you can realistically submit comments to me. Thanks. Chris.”

The second mistake was when I was too scared to open up the skull of ASPM knockout ferrets, which had cost nearly $30,000. You know that mice with their tiny and smooth brain don’t represent human brain development well. So I ambitiously started a knockout ferret project, because their brain is large and gyrencephalic. I did molecular cloning of genetic scissors to disrupt the gene ASPM, and everything went well. The problem came when I was not psychologically ready to open up the large skull of the ferret because I was scared! So I put the fixed heads in a jar in a cold room for a while, until the day of my lab meeting. Chris couldn’t believe that I postponed it at all, so he directly dissected the ferret brains right after the lab meeting. I am sure that some of you here remember how Chris used these veterinary dissection tools to show me how to do it. Thankfully, the ASPM knockout ferrets had small brains and they are generating lots of data now. Thank you, Chris, for the vivid demonstration of ferret brain dissection. I will never forget this lesson.

The last memorable mistake is when I almost caused the lab to fail a safety inspection by hiding beer bottles in a drawer under my bench. When we were in the New Research Building in 2006 and 2007, we had a happy hour with the Church lab and the Winston lab in the lounge every Friday afternoon. There was beer, so I drank some. But I had this dangerous habit of finishing my beer in the lab. After I finished, I found it too much work to take the empty beer bottle to the recycling bin in the lounge, and so I stockpiled them in a drawer under my bench. I just wanted to take care of them later. Unfortunately, none other than the lab safety inspectors took care of them before me. They saw the empty beer bottles, laughed a while, and wrote that in the safety report. Our lab manager at that time, Christina, came to me on the next day and said, “BI! Just stop it! Why are you doing this?!” I asked, “Does Chris know?” She said, “Of course, he knows. What are you thinking?!” Of course, Chris did not tell me anything, and I never made this mistake again.

Despite all these mistakes, I was able to publish a small paper and got a job at a small university in New Haven along with my wife. Also, our boys are as healthy and funny as ever. What else could I possibly need? I am so grateful for everything that I have been given in this lab.

Even after I leave, please don’t hesitate to contact me or other lab alumni. We are like a big clan of brothers and sisters helping each other. For example, I was enormously helped by Chiara, Maria, Ann, Tim, and even Noelle during my job search. We will definitely help you go a long way.

Thank you.

(Delivered on 8/1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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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의미

오랜만이다. 지난 3주간 몸과 마음이 폭풍과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뭘 해도 집중하기 힘든 이 시간에, 맘에 스치듯 잠깐씩 담아만 두었던 이야기들을 모국어로 하나씩 쓰면서 버텨보려고 한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의미 (2017년 2월 26일)

예일에 자리 잡은 지 1년 반이 되었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흘러간 시간들이었다. 미국에 온 지 16년 만에, 독립된 과학자로 새롭게 시작하는 설레는 마음과 흥분은 출근 첫날 ID 카드를 만들고 몇 시간도 채 가지 않아 낯선 곳에서의 어색함과 막연한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어리버리한 조교수로 텅 빈 실험실을 채우기 위해서, 능수능란한 세일즈맨들을 힘들게 상대하며 첫 몇 개월이 지났다. 하버드에서부터 내 인턴 학생으로 일하다가 예일로 따라온 학부생 프레드와 단둘이 실험에 필요한 각종 시약과 장비를 구입 설치하며 실험실을 채워나갔다. 여러 현미경 시연하느라 많은 시간을 썼고, 실험실이 채워지면서는 작은 실험들을 시작하면서 연구원 모집에 공을 들였다. 1년을 꽉 채우고 뉴헤이븐에서 첫 여름을 맞을 즈음엔 두 명의 박사 후 연구원과 실험실을 꾸려 나가고 있었고, 6개월이 더 지나 두 번째 겨울을 나고 있는 지금은 어느덧 학과의 신임 조교수 후보들과 대학원생 후보들을 한창 인터뷰 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예일에서 연구 보조원으로 일하면서 대학원을 지원한 한국 여학생 한 명을 인터뷰하게 되었는데, 인터뷰가 끝나고 다음 날 장문의 이멜을 보내왔다. 내가 예일 한인 과학자 모임에서 강연하는 것도 들었고, 우리 과 retreat 에서 다른 사람들과 얘기하는 것도 보면서 나를 역할 모델로 지켜봐 왔다고 했다 (“I look up to you as my role model”). 내가 미국에서 한국 여성 과학자로 이 자리에 있으면서 경험을 나눠 주어서 힘이 되고 감사하다고 한다.

내가 이 자리에서 잘 해내든 못 해내든,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어느덧 후배들에게 어떤 의미를 띄게 되었다. 10명이 모두 남자인 방에 들어가는 것과, 1명이라도 여자가 있는 방에 들어가는 것은 완전히 다른 느낌인데, 이 한 명이 주는 파장과 심리적 안정감은 뒤따라오는 이에게 매우 크기 때문이다. 백명 중 하나라도, 하나는 가능함을 보여주는 것이므로.

내가 1993년 서울대 분자생물과에 입학하니, 과 역사상 가장 많은 여학생이 입학한 해로 기록된 그 해에 여학생은 21명 중 6명이었다. 하지만 생물 3과로 불리던 우리 학과와 생물과, 미생물과 교수님들 40 여분을 모두 합해도 여자 교수님은 노정혜 선생님 한 분이셨다. 노정혜 선생님의 Molecular Biology 수업이 유명하기도 했지만, 그 자리에 계신 선생님이 유난히 크게 내 맘에 남아있다.

결혼을 하고 미국에 유학 와서 존스 홉킨스에서 박사 과정을 하니 상황이 조금은 달라졌다. 여학생 비율은 절반에 조금 못 미쳤지만, 무엇보다 여자 교수님들이 20% 정도는 되었다. 캐롤 그라이더 (Carol Greider), 재니스 클레멘스 (Janice Clements), 제랄딘 시듀 (Geraldine Seydoux), 드니스 몬텔 (Denise Montell), 레이첼 그린 (Rachel Green) 등 여러 여교수님들 중 내 눈길이 가장 가는 분은 드니스 몬텔이었다. 내가 남편과 아이 둘을 낳아 키우고 같이 실험을 하는 생물학 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박사 때 별로 신통찮은 성과에 자존심에 상처도 많이 입었다. 둘이 같은 길을 가는 것이 가능할까 고민도 많았다. 한국보다 여자 교수님들이 많기는 했지만, 부부가 두 분 다 생물학계에 계신 분들은 지금 손꼽아도 찾기가 어려운데, 나는 운 좋게 바로 옆 실험실에 크레이그 몬텔 (Craig Montell) 과 드니스 몬텔 교수님들이 계셨다. 중간에 그만 둘까 몇번 생각이 들 때마다, 크레이그와 드니스를 떠올렸다. 나중에 졸업 즈음 학교 계단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당신들이 우리의 롤 모델이었노라 고백했다. 얼마 전에는 교수 인터뷰 때 이제는 University of California Santa Barbara로 옮긴 크레이그를 다시 만나게 되어, 그 옛날 갓난쟁이들 데리고 고군분투할 때 당신들의 존재만으로도 힘이 났다고 했다.

이제는 대부분의 대학원에서 여학생의 비율이 과반수나 그 이상을 차지한다. 하지만, 내가 대학원을 들어갈 때와 강산이 거의 두 번 바뀔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자 교수들은 여전히 20-30% 에 머물고 있다. 우리가 오기 전부터도 이미 예일에는 여러 명의 한인 과학자들이 계시지만, 여성 과학자들에게 내가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또 힘겨운 젊은 부부 과학자들에게는 나와 남편의 존재가, 조금이라도 더 버틸 수 있는 작은 이유 또는 희망이 되길 바란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 며느리의 자식이니

음력으로 11월 5일.
큰아들. 네 생일이다.

감회가 새롭구나.
어느새 장성해서 이제 곧
아래로 한 대를 두게 되니.
대견하고 고맙구나.

지켜만 봐도 저리 잘하는 것을.
돌이켜보면
엄마는 네게 못한 것이 너무 많구나.

좀 있으면 태어날 너의 아기는
그저 건강하게만 길러라.
튼튼한 몸, 얼마나 감사한가!

아기가 자라가면
그 나이에 맞게 친구가 되어 주고.
많은 간섭은 하지 마라.
너의 자식이니
믿고. 또 믿고 지켜보렴.

사랑하는
나의 아들, 며느리의 자식이니
분명 아기는
마음이 바르고 곧을 것이다.

2003년 아들 생일에 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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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이 편지를 한 천 번은 읽었을까.

어렵고도 힘든 부모의 길을, 이 글 하나로 지탱해가면서 걷는다.

“한 때 행복했었던 것도 행복한 것”

“오랫동안 포닥하는 것도 힘들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한 것도 힘듭니다, 아버지.”

“앞으로 더 잘 풀릴 수도, 더 안 풀릴 수도 있다.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래도 너는 좋은 학교에서 좋은 선생님과 같이 일했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 아이들을 낳아 키웠으니, 앞으로 어떻게 되든지간에 그간 행복한 편이었다고 할 수 있지.”

“물론 아버지 말씀대로 제가 그 동안 대체로 행복하게 산 게 사실이지만, 앞으로 잘 풀리지 않는다면 과거에 잠깐 행복했던 것이 무슨 소용입니까. 결국 사람은 끝이 좋아야 다 좋은 것 아닙니까.”

“인생은 짧다. 그리고 잠깐 행복했었던 것도 행복한 것이다. 지금 힘들다고 해서 과거에 행복했던 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과거는 과거대로, 현재는 현재대로, 미래는 미래대로 각각의 행복과 불행이 있다.”

[진주] 아빠의 편지 – 2010년 11월 4일 늦은 저녁

역시 기록을 해 두고 곱씹지 않으면 기억은 재편집 되는 법인가 보다. 최근 발표한 논문에 대해 서면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인터뷰 말미에 혹시 글을 읽는 다른 분들께도 도움이 될까하여, 마음이 힘들 때면 늘 되새기던 아빠의 말씀을 인용했다. ‘인생이라는 게 여러 부분 다 같이 가는 거다’ 그러니, 하나 끝내 놓고 다음 것 하고, 또 그 다음 것 하려고 하면서, 조급해 하지 말고 다 같이 보듬으면서 천천히, 꾸준히 가라는 말씀이었다.
 
막상 글이 실리고 나니, 그 당시 실제로 뭐라고 써 주셨는지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지갑 속에 아빠의 그 전자우편을 인쇄하여 조그맣게 오려서 넣어둔 기억이 나서, 꺼내 보았더니… 아래와 같은 영문 편지가 나왔다. 
 
Late evening Nov 4, 2010
Jean-Ju my darling:
 
Even though life’s burden on your shoulder seems heavy at this moment, don’t let you down and discouraged. Keep up doing what you’ve been doing so far, no more no less, just enough to sustain yourself. When time comes, you’ll be ready to harvest. I’m sure you will bloom where you are planted someday. I’m always behind you and ready to lend you hand whenever you need. Your mom is always praying for you and I’m too, in my own way.
 
Dad
 
난 ‘인생, 다 같이 가는 거다’ 이 말이 아빠가 내게 주신 편지에 있었다고 내내 믿고 있었다. 이 편지를 곰곰히 읽어보니, 이 편지를 써 주시기 며칠 전 전화 통화해서 해 주신 말씀이었던 것 같다. 인터뷰에는 쓰지 않았지만, 지금 느리다고 조급해하지 말고, ‘그냥 남보다 1-2 년 더 살아라’ 라는 웃지 못할 우스개 소리와 함께.
 
주말마다 전화 통화를 하면, 엄마로도 과학자로도 제 역할을 못하는 것 같은 이 딸래미는 늘 우는 소리를 했다. 한국의 그 시대의 많은 아버지들처럼 우리 아빠도 위로보다는 독려를 하시기 마련인데 (‘젊을 때는 다 힘든 거다, 남들도 힘들 게 산다, 더 노력해야지 어쩌겠느냐’), 이 날은 왠지 동동거리고 사는 딸래미의 풀죽은 목소리가 많이 안쓰러우셨는지, 위의 말씀을 해 주셨다.
 
나는 아빠의 말씀에 큰 위안을 받았지만, 아빠와의 관계가 미국으로 떠나 온 1999년에 멈춰버린 나는 나이가 들어도 철이 들지 못하고, 늘 그렇듯 퉁명스레 대화를 마무리해 버렸었다. 아빠는 계속 맘에 걸리셨는지 며칠이 지나 전자 우편을 보내셨다. 딸에게 다정한 속내를 내 보이시는게 어색하셨는지, 영어로 써 보내신 게 위의 글이다. 
 
아빠의 진짜 편지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 동안 정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냥 하던 것처럼 하며 계속 버텼더니, 뭔가 수확물 하나를 내 놓게 되었다.

요즘 기분

마라톤을 뛰었다. 42.195 km를 열심히 뛰었다. 사람들이 결승점에서 커다란 수건과 시원한 물을 들고 기다리고 있다. 주자가 결승점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얼른 달려와 수건으로 감싸주고 물을 건네고 어깨를 두드려주고 안아준다. 

“수고했어!”

그런데 우리에게는 아무도 다가오지 않는다. 아무도 수건과 물과 격려를 건네지 않는다. 

“아직도 뭔가 좀 부족한 것 같네요. 한 바퀴 더 뛰세요.”

이미 기진맥진해 있는데, 이 지겨운 뜀박질을 더 하라고 한다.

아무도 안 보는 곳에 가서 혼자 울음을 삼키고 또 달린다.

과학의 길은 언제 달려도 낯설고 힘들다. 

나의 연구

Science, 14 February 2014: Vol. 343 no. 6172 pp. 764-768 | DOI: 10.1126/science.1244392
 
Evolutionarily Dynamic Alternative Splicing of GPR56 Regulates Regional Cerebral Cortical Patterning
 

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인간의 대뇌에는 1000억 개나 되는 엄청난 수의 신경세포가 들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와 가장 가까운 영장류인 침팬지보다 12배 이상 많은 엄청난 숫자입니다. 이 많은 신경세포 덕분에 인간은 놀라운 지적 능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신경세포들을 두개골 안에 어떻게 다 집어넣을 수 있을까요. 뇌의 부피를 늘리는 것이 한 방법이겠지만, 인간의 뇌는 1300 cc 정도로 침팬지의 뇌 400 cc보다 세 배 조금 넘는 정도의 부피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부피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1000억 개의 신경세포를 담기 어렵습니다. 또 다른 방법으로 대뇌피질의 두께를 늘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뇌피질의 두께는 영장류에서 아주 많이 차이나지는 않습니다. 여기에서 ‘주름 (gyri)’이 답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대뇌피질은 침팬지에 비해서 훨씬 주름이 많아서 신경세포를 훨씬 더 많이 넣을 수 있습니다. 인간 뿐만 아니라 거대한 뇌를 가지고 있는 돌고래와 코끼리도 주름이 아주 많이 잡힌 대뇌피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뇌피질의 주름이 어떻게 발달하고 진화하는지는 아주 재미있고 중요한 생물학적 질문입니다. 그러나 쥐의 대뇌피질에는 주름이 전혀 없는 까닭에 주름 발생에 대한 연구가 거의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인간유전학과 쥐를 이용하여 인간 대뇌피질의 국소적 주름 발생에 대한 연구를 해왔는데, 그 결과를 다행히 이번 사이언스 논문으 발표할 수 있게 됐습니다. 

2005년에 제가 속한 Christopher A. Walsh 실험실에서 특이한 두뇌 이상 발달 돌연변이를 몇몇 환자들에게서 발견했습니다. 뇌의 일부(ventrolateral frontal lobe)에만 주름이 너무 많이 생기는 병(polymicrogyria)입니다. 환자들은 발작, 언어 장애, 지능 이상 등의 문제를 겪습니다. 브로카 언어 영역(Broca’s area)이라고 해서, 말할 때 활성화되는 부위에도 문제가 생깁니다. 

이런 돌연변이는 보통 열성형질(recessive allele)이라서 보인자(carrier)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근친 결혼을 하지 않는 한 병을 피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중동과 그 부근 지역에서는 근친 결혼의 풍습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어서 열성형질을 가진 보인자 근친 부부가 만나면 멘델의 유전법칙에 의해 대략 자녀의 25%가 질병을 갖고 태어나게 됩니다. (Aa X Aa = AA + 2Aa + aa. AA와 Aa는 문제가 없고 aa만 문제가 생깁니다.) 왜 근친결혼의 풍습을 유지하는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인류학적 설명이 있습니다. 저희 실험실에서는 인간 유전학을 통해 이런 열성 돌연변이들을 찾아내서 연구합니다. 그래서 근친 결혼이 많은 지역의 의사들과 공동연구를 많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환자들이 보이는 증세로는 발작, 언어 장애, 지능 이상, 자폐증, 정신분열증, 두뇌 기형, 신체 기형 등이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근친 결혼을 다들 피하지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근친끼리 결혼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연구한 환자들의 경우, 어디에 돌연변이가 생겼는지 보니까 GPR56 (G protein-coupled receptor 56)이라는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스위치 (cis-regulatory element) 하나가 고장난 것이었습니다. 이런 돌연변이는 굉장히 드물고 더구나 인간 두뇌 발달에서 이런 경우가 보고된 경우는 별로 없어서, 새롭고 흥미로웠습니다. 

이 신기한 돌연변이를 발견한 포닥 Ian Tietjen은 2006년 봄에 실험실을 떠납니다. 2006년 9월에 Christopher A. Walsh 실험실에 들어간 저는 무슨 프로젝트를 할까 고민하던 차에 교수가 이거 한번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습니다. 제가 인간 두뇌의 진화와 발달에 관심이 있다고 했거든요. 두뇌 발달 관련 유전자들 중 인간에게서 특별히 더 진화한 것들을 연구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랬더니 이걸 해보라고 제안했습니다. 인간의 GPR56 유전자는 쥐의 Gpr56 유전자에 비해 훨씬 많은 스위치를 갖고 있고, 또 고장난 스위치 자체도 인간과 쥐가 염기서열상 약간 다르게 생겼기 때문입니다. 

기능이 확실한 유전자를 연구하는 것이었으면 그나마 좀 쉬운데, 이 GPR56의 기능도 불확실한데다가, 스위치(cis-regulatory element)가 고장나는 돌연변이(noncoding mutation)를 연구하게 되어서 오래 걸렸습니다. 옥상옥(屋上屋)인 셈입니다. Noncoding mutation이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연구하기는 참 고역입니다. 사람들이 스위치에만 만족하지 않고, 그 스위치에 의해 조절되는 유전자의 기능이 무엇인지 묻기 때문입니다. ‘그 스위치가 재미있는데, 그래서 GPR56 단백질이 무슨 역할을 하나요?’하는 질문을 참 많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cis-regulatory element 연구와 GPR56 기능 연구를 동시에 하느라 시간이 예상보다 많이 걸렸습니다. 

이 연구를 통해 저희 팀은 (1) 이 스위치가 고장나면 RFX라는 전사인자가 스위치에 더 이상 달라붙지 못 하게 되고 GPR56의 발현에 문제가 생긴다. (2) GPR56은 대뇌피질의 신경줄기세포 증식을 조절한다. (3) 영장류 GPR56은 쥐 Gpr56에 비해 훨씬 더 복잡하고 많은 스위치를 가지고 있다. (4) 영장류의 스위치는 쥐의 스위치에 비해 더 제한되고 정교한 유전자 발현 조절 기능을 갖고 있다. 등을 밝혀냈습니다. 대뇌피질 주름 발달에 주는 의미는 ‘대뇌피질이 비정상적으로 얇아지면 주름이 과도하게 증가한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에 가시면 일반인을 위한 영문 기사가 있습니다. 

지도교수가 저에게 이 프로젝트를 제안할 때 6개월이면 끝나지 않을까 예상했더랍니다. 저는 또 그 말을 믿고 6개월 하면 될 걸로 생각했더랍니다. 교수와 포닥의 이런 과학적 순진함이 어처구니 없기도 하지만, 실상 이런 순진한 용기가 인류를 한 단계 더 도약시킬 수 있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대뇌피질 발생학 분야는 신경생물학의 아버지인 Ramón y. Cajal에서부터 시작했지만, 지난 40년간 Rakic, Sidman, Caviness, Hatten, Kriegstein, Rubenstein, Fishell, Walsh, Sestan를 비롯해 많은 과학자들의 성과로 큰 발전이 있었습니다. 대뇌피질 발달 자체가 중요한 생물학적 문제이고, 비정상적 발달은 간질, 정신지체, 언어 장애, 자폐증, 정신분열증 따위의 심각한 문제로 연결되기 때문에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발전이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특히 인간유전학 연구를 통해 두뇌발달에 중요한 유전자들의 목록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기능 연구가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 드립니다.

하버드 의대 (Harvard Medical School) 소속 보스턴 어린이 병원(Boston Children’s Hospital)입니다. 하버드 의대와 캠브리지 캠퍼스에서 수많은 연구소/연구실/연구원이 방대한 양의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거대한 지적 공동체 덕분에 새로운 연구 결과를 어느 연구 기관보다 빨리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장점입니다. 그러나 너무 규모가 크다보니 사람들 사이에 가까움이 없고 다들 바빠서 소속의식과 교류가 부족한 것이 단점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학부를 마치고 (하버드에 비해 소규모인) 존스홉킨스에서 박사를 했는데, 하버드에 와서 지도교수 이외의 과학자들과 별로 친하게 사귀지 못해 안타까웠습니다. 이런 불만은 저뿐만 아니라, 콜럼비아, UCSF, 베일러, 예일, MIT에서 박사를 받은 포닥 친구들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하버드의 명예로운 이름값 덕분에 거대한 연구 공동체가 생긴 것은 좋지만, 그 이면에는 이런 그늘이 있습니다. 

3. 연구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제가 대학원생 때 논문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해서 포닥 때는 좀 쉽고 짧은 연구를 해보자고 결심했는데, 연구는 왜 이리 해도해도 끝없이 어려운지 모르겠습니다. 이 연구는 특별히 고된 작업이었습니다. Chris도 자기가 해본 연구 중에 제일 어렵다고 했습니다. 교수에게도 첫번째 noncoding mutation이었으니까요. 그래도 어디엔가 쉬우면서도 중요한 연구가 있을지 모른다는 즐거운 공상을 하면서 삽니다. 

Cis-regulatory element와 GPR56 protein을 동시에 연구해서 그만큼 앞으로 던질 수 있는 생물학적 질문도 많아졌습니다. 또한 미국, 영국, 일본의 여러 과학자들과 친해져서 앞으로 연구에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제가 포닥하는 동안 새로운 줄기세포 기술과 새로운 유전자 조작 기술이 개발되어서 이전에 못하던 연구에 도전해볼 엄두를 낼 수 있게 됐습니다. 

연구 주제가 흥미로워서, 연구 초기부터 사람들에게 많은 격려를 받을 수 있었던 게 좋았습니다. “정말 재밌다. 할 일은 많아 보이지만”하는 반응을 7년 내내 들었습니다. 학계 안팎에서 이런 얘기를 듣는 것은 큰 격려가 됩니다. 덕분에 포닥 1년차 때만 빼고 내내 외부연구비를 따낼 수 있었습니다. 주제 자체가 흥미로워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원생 때는 “일은 열심히 잘 했다. 그런데 원래 좀 그럴 거 같지 않았나? 별로 안 신기하다”하는 얘기를 종종 들었는데, 마음에 큰 짐이 됐습니다. 자기 연구 얘기로 다른 사람들을 매혹시키지 못 하면 과학자로서 사기가 몹시 떨어집니다. 

어느 논문인들 안 그렇겠습니까만, 제 논문들은 하나하나가 오래 걸렸습니다. 왜 논문을 더 많이 더 자주 쓰지 못했을까하는 아쉬움도 들지만, 이 논문들이야말로 제가 인류 지성에 남기는 작은 벽돌, 작은 획이기 때문에 하나도 허투루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치고 또 몰아쳐서 얻은 작은 결과들을 쌓아, 논문 하나하나를 힘겹게 토해냅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자기만의 고유한 영역을 개척하는 것은 과학자로서 참으로 힘들지만 의미있는 일입니다. 저는 포닥 동안 제 고유한 연구 영역을 개척하고 기존 학자들과 차별화시키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남들이 오랫동안, 많이 연구한 주제를 더 자세하게 들이파면 남들이 금방 알아주고 인용수도 높힐 수 있지만, 개척자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도 관심없는 전혀 엉뚱한 것을 하면 과학자로서 당장 밥벌이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그런 것들에서 혁명적인 green fluorescent protein과 channelrhodopsin이 나오고 miRNA가 나오고 CRISPR 나온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연구의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하는 것은 과학자로서 늘 고민거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5. 연구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독립된 과학자로서 제 연구실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중입니다만, 너무 훌륭하신 분들이 많아서 어떻게 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과학은 모르는 것을 탐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답답하고 어렵지만, 재현가능한 데이타가 우리를 새로운 방향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치밀함과 근성으로 한결같이 진리를 추구하시는 과학자 한분 한분께, 노력에 알맞은 보답이 주어지길 빕니다.

 

출처: 한국을 빛내는 사람들 인터뷰